창조,생각 군인

하 면 된 다 !!

촘배 2009. 1. 25. 20:38

군 생활을 하다보면 생활환경이 사회에 비해 굉장히 뒤쳐져 있으며, 건물도
오래 되었고, 여러 가지 편의시설 역시 전반적으로 노후되었음을 느낀다.
‘노후’란 상태가 좋지 않음을 의미하는데 나는 개인적으로‘열악’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사실 상급부대에서 지시가 내려올 때 예산과 시간을 비롯한 자원이 충분하게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이런 일을 가지고 불평불만하기보다는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조그만 일 하나하나를 해나가다 다음 지휘관이 또
하나하나를 해나가면 결국 부대가 발전한다. 자기의 이름을 과시하기 위한
사업을 벌이면 궁극적으로는 부대의 발전에 역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상급부대가 예하부대를 위해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감안해서, 건물을 더 지어 달라든가, 예산을 더 달라든가하는 애로사항을 이야기
할 때에는 신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현재 내가 원하는 것보다도 더 필요한 부대, 더 필요한 사람이 없을까
하는 상대적인 차원에서 요구해야지 그저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식으로 생각
나는 대로 요구한다면 하나도 얻지 못하면서 오히려 섭섭함만 남게 된다.
사단장으로 있으면서 역사관을 고친 것이 한 예가 될 만하다. 우리는 우리
에게 나온 예산범위 내에서 이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했고, 모든 일을 우리
능력범주 내에서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작은 돈이지만 부대 복지기금을
절약하였고, 어디에서 위문금이라도 들어오면 그것을 이용하여 부대역사관을
보수하였다. 상급부대에서 역사관을 보수한 내용을 보고 어떻게 보수했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보수비를 전용하지 않고 위문금을 가지고 이만큼 이룩했다고
대답했고 그에 대해 사단장이 돈 나갈 일도 많을텐데 역사관에까지 이렇게
많은 노력을 쏟으셨냐며 그들은 새삼 놀라는 모습이었다. 이 말이 좋은 의미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달성했다.
세계적인 전쟁 영웅 나폴레옹이 남긴 말 중에“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는
명언이 있다. 대규모의 군대를 이끌고 알프스 산맥을 넘고 대운하를 스스럼없이
건너는 그를 두고 당대의 사람들은 천재라 일컬었다. 그러나 그는 천재가 아니라
전쟁에 대한 모든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항상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며, 그 상황에 닥쳤을 때 자신이 준비한 것을 언제나 최대한 활용한,
그리고 미래의 양상을 잘 예측한, 뛰어난 지휘관일 뿐이다.
나 역시 지휘관으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요건들에 대해 항상 심도 있게
고민하고, 관찰의 결과를 현실에 조화롭게 적용해 보려고 노력한 지휘관에
불과하다. 우리 부대가 이루어낸 산물은 많은 이들이 경이롭게 보기도 하지만,
이는 오랜 시간 동안 부대의 모든 것을 개선하고자 노력한 결과일 뿐, 그것이 특이
하다거나 천재적인 발상이라고 불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중대장 당시의 얘기다. 새로 오신 대대장님께서 부임하시자마자 하신 일중에
위병소 간판에“되게 하라”는 간판을 설치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제 군 생활이
힘들어지겠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은 두려워하면서‘안되는 일은 안되는 것이지’
라는 소극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요 업무 하나를 부여
받았는데, 그 일이 조금은 까다롭게 보였는지 상급부대에서는 해당 업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고 업무추진이 안될 위기에 놓였다. 그때 더 이상 소극적인
생각과 방식으로 이번 일에 임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모든 능력을
최대한 집중해서 상급부대 또 상급지휘관, 옆에 있는 동료를 찾아가 사정도 하고,
정식으로 보고도 하고, 개인적으로 부탁도 해보고, 화난 얼굴로 대들어보기도
하는 등 적극적으로 추진한 결과 끝내는 성사시켰다. 그 이후 나는 군 생활을
하면서 흔히 하는 얘기로 남자가 아기를 낳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다고 확신하며 생활하게 되었다.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일을 적극적으로 실천해서 끝내 성공했을 때,
이때의 성취감이란 보통 평범한 일을 완수하였을 때의 성취감보다 수십,
수백배이며 이때 느끼는 보람은 다른 무엇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 뒤로 나는
모든 일에 적극적인 자세로 임해야만 좋은 결실을 거둘 수 있다는 교훈을 얻게
되었고 이러한 인식이 오늘날 나의 지휘철학의 주요요인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또, 대대장으로 재임 중이던 시절, 나는 사단에서 개최되는 대대 대항 전투력
경연대회(20종목)에 좋은 성과를 얻기 위해 전 부대원이 하나가 되어 부단히
노력하였으나 우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첫날 8개 종목에서 꼴찌를 하고 말았다.
매우 실망스러운 결과였지만 여기에서 포기한다면 희망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나는 우리에게 주어진 하룻밤의 짧은 시간 동안에도 장병들과 열심히
의논하고 토의하여 문제점을 도출하는 한편 그들과의 공감대 형성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다. 장병들과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는지 둘째날과 셋째날 벌어진
경기에서 우리 부대는 무장구보와 사격 등의 전 종목을 석권하여 우승할 수
있었고 5분대기 차량에 부상으로 수상한 누런 황소를 싣고 개선장군마냥 씩씩하게
돌아올 때의 그 기쁨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지금까지의 인생을 차분히 돌이켜 회고해보니 인간은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존재임이 확실하다. 요즘 인구에 회자되는 신지식인이라는 용어도 알고 보면
인간의 한계를 시험해본 사람들의 이야기다. ‘하면 된다, 되게 하라’는 생각과
태도가 세상을 바꾸리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