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생각 군인

기왕이면 다홍치마

촘배 2009. 1. 25. 20:33

옛날 우리 어린 시절에는 흰저고리에 검정치마가 최고였다. 단정하고 소박한
한민족의 정서에 딱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점점 생활수준이
나아지면서 사람들의 기호가 바뀌어 이제는 여러 가지 많은 색상과 모양을 선호
하고 새로운 아름다움의 기준이 만들어지고 있다. “하나의 현상, 생활, 부대환경
등 모든 것들이 더 나을 수 없을까? 좀 더 아름답고, 좀 더 편하게…….”
사단장이 되기까지 수많은 지휘관과 상급자를 만나면서 상관에게는 충성을
다하고 동료와 부하들을 사랑하며 군 생활을 해 왔다. 또한 훌륭한 지휘관을
모시고 일했을 때 나의 능력이 더 많이 발휘되었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모셨던
지휘관은 사리사욕을 채우려 하지 않았고 입신출세(立身出世)의 욕심이 없는,
후배들에게 진정한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그런 분들이셨다. 나는 전투군인으로
서의 자세와 성실성과 충성을 가르쳐 주신 상관을 모셨던 것이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소리만 지르고 무서운 것보다, 자세하고 구체적 방안을 제시해
준 지휘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런 까닭에 나는 지금까지의 군 생활 동안
부하들 행동 하나, 부대의 모든 모습 하나에 좀 더 나은 부대로 만들기 위해
‘기왕이면 이게 더 나을텐데’라는 의식을 가지고 살아왔다.
우리 속담에‘기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이 있다. 똑같은 것이 있을 때 기왕
이면 더 보기 좋은 것, 더 편안한 것이 좋다는 말이다. 나는 내가 지휘하는
부대는 보다 차별화된 부대로 육성하고 싶었다. 아주 작고 사소한 부분에서
부터–혹자는 지나치게 완벽하고 꼼꼼하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내가
지휘하는 부대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흔히 말하는‘견문(見聞) 있는 부대’
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견문이 있다는 것은 보고 느끼기에 세련되고 깔끔하고 본때 있고 보다 높은

수준의 것으로 되어 있다는 말이다. 비록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일상생활에서
모든 사물을 눈여겨 보며 귀담아 듣는 습성이 몸에 베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잠재력을 기르게 된다. 눈여겨 보고 듣고 하여 지금의 것보다 더 나은 것을
만들어내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특히, 군 영내(營內)와 같이 젊은 병사들이
생활하는 환경을 가꾸는 데는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모든 환경이 그들이 보고
느끼고 배우는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견문있게 꾸미거나 갖춘
다는 것이 반드시 비싼 것과 사치스러운 것 등으로 장식한다는 뜻은 아니라 있는
것을 가지고 가장 경제적으로 무리 없이 만들어 내되 만들어진 결과가 멋있고
깔끔하고 완벽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나는 가장 먼저 부대의 기존 담장을 허물고 입구에서
부터 변화를 시도했다. 외부에서 보는 군에 대한 고리타분한 인식을 바꾸고자
담장을 깔끔하게 새로 쌓고 푸른색 기와를 얹었으며 입구의 바리케이드 색깔도
좀 더 선명하게 바꾸었다. 또한 작은 부대 표지판의 색과 부착 상태까지 꼼꼼히
살폈다. 군에서 페인트를 구할 때 주로 국방색이 많지만 그래도 여러 가지 색깔을
확보해서 우리 부대가 색깔로 어울리게 할 정도로 노력해왔다. 혹시라도 잘못
색을 배열해서 흉하고 안 어울리게 되지 않도록, 똑같은 돈을 들이고도 깨끗하게
색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간판 색은 초록 바탕에 노란 글씨로 가장 선명하게
보이도록 하였고, 연병장의 사열대 간판을 깨끗이 제작하여 행사할 때마다
새로 현수막을 제작하도록 하는 수고를 덜도록 하였다. 또한 보안 방송, 군가
방송 그리고 집무실 집기에 이르기까지 신경을 안 쓴 부분이 없을 정도였다.
특히 병 복지, 부대관리 쪽에서도 장병들이 보다 실속있고 안전한 군 생활을
하도록 하기 위해 식생활에서부터 환자 관리, 병영내 올바른 언행실천, 통합
이발소 운용, 부대조경 등 작은 것 하나하나 변화시켜 기왕이면 좀 더 나은
부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다. 우리 부대원들에게 격조 높은 것, 세련된 것,
깔끔한 것, 훌륭한 것 등 수준 높은 것들과 접할 기회를 만들어 줌으로써 보고
듣고 느끼며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부대원 모두가 견문
있는 부대로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언제나 부하들에게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였으며, 나의 옛 지휘관들께서 나에게 그러하셨듯 명확한 지침과 세심한
지도로 부하들을 이끌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