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부터 3월 14일까지 일본에서 매주 수요일 밤 방영됐던 인기 드라마 `파견의 품격`.
일본 민영방송인 니혼TV에서 만든 이 드라마는 매번 시청률이 20%를 넘었으며 마지막회는 26%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 드라마에는 두 여성 파견사원이 등장한다 . 26개 이상 자격증을 갖고 있으며 시간당 3000엔(연봉 312만엔) 이상 받는 `슈퍼 파견사원`과 일을 제대로 못한다며 거의 매일 구박을 받는 23세 신출내기 파견사원(연봉 81만엔)이 나온다 . 이들이 정규직 사원들과 직장에서 겪는 갈등과 애환이 재미있는 일화로 소개된다.
이 드라마는 고이즈미 전 총리 아들로 탤런트인 고이즈미 고우타로 씨(29)가 마케팅 부서 주임 역을 맡아 더욱 화제가 됐다 . 이 드라마가 예상외로 인기를 끈 배경에는 주인공들과 처지가 비슷한 파견사원 또는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일본인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 이 TV 프로그램은 지난 10년간 일본 사회가 겪은 고용 형태 변화를 보여줬다 . 수요일 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많은 일본인이 "저건 내가 매일 겪고 보는 이야기"라며 공감을 표했던 것이다.
일본은 1991년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 거품이 꺼진 후 비정규직이 크게 늘었다 . 일본 총무성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자영업자를 제외한 근로자 가운데 비정규직은 무려 1700만명에 달한다 . 어림잡아 직장생활을 하는 3명 중 1명이 비정규직이란 얘기다.
1995년과 비교하면 정규직은 440만명 줄어든 반면 비정규직은 670만명이나 늘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비해 처우가 형편없다 . 평균 임금이 월 19만엔(약 160만원)으로 정규직 32만엔(262만원)에 비해 100만원 이상 적다 . 경기가 나빠지면 고용계약 해지를 가장 먼저 통보받거나 다른 직장으로 파견돼 일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가장 큰 문제는 젊은 층 고용 형태 변화다 .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1990년대 초만 하더라도 젊은 층 가운데 비정규직은 10% 이하에 머물렀으나 자산 거품이 붕괴되면서 이 비율이 급속도로 늘어났다 . 작년 8월 기준으로 25~34세 근로자 중 26%가 비정규직이다.
이 때문에 일본인들은 1991년 이후 대학이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25~35세 연령층 사람들을 `로스트 제너레이션(잃어버린 세대)`이라 부른다 . 당초 이 용어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기존 도덕이나 상식 등 가치관을 상실하고 절망에 빠진 세대를 의미했는데, 일본에서는 `잃어버린 10년 사이에 사회에 진출한 젊은 층`을 일컫는 용어로 정착됐다.
이른바 `취업 빙하기` 때 사회에 나온 이들은 정규직이 아닌 아르바이트, 파견사원 등 비정규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람이 많았다 . 상당수는 아예 구직활동이나 직업훈련을 단념한 `니트족`이나 몇 시간씩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가는 `프리타`(200만명)로 전락했다.
직장에서 제대로 된 훈련이나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고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도 제대로 내지 않은 이들이 사회의 주역이 될 10년 후, 20년 후 일본은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 있을까. 일본 국가경쟁력이 저하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 물론 이 같은 문제점을 뒤늦게 깨닫고 일본 정부와 대기업을 중심으로 파견사원에 대한 정규직 전환이 많아졌지만 이미 흘러간 10년이라는 시계를 되돌리기에는 늦었다.
한국 상황은 어떤가.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월 20대 취업자 수가 300만명대로 추락했다 . 1986년 2월 387만명을 기록한 후 21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 20대 태반이 백수라는 `이태백` 시대가 가고 20대 중 90%가 백수라는 `이구백` 시대가 도래했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 오죽하면 모 지방대학 학생들이 일자리 창출을 요구하는 `집단 헌혈 캠페인`을 벌였을까. 외환위기를 겪은 1998년에도 청년실업은 있었지만 지금처럼 장기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 최근에는 기업들이 경력직 선호 경향을 분명히 하면서 `한국판 로스트 제너레이션`이 더욱 양산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 더 늦기 전에 일본 고용시장 변화에서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