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스크랩] 바다·산·계곡의 조화 전북 부안 변산반도

촘배 2008. 8. 8. 09:54


바다·산·계곡의 조화 전북 부안 변산반도



삼면이 바다고 국토의 대부분이 산악지대인 내 나라에서 멋진 바다와 계곡이 어디 한 둘일까마는, 바다와 산과 계곡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곳은 그리 흔치 않다. 전북의 변산반도는 그것을 가능케 해준다. 산과 바다가 만나 만들어 내는 풍경이 빼어나다고 해서 산해절승으로 이름을 떨친 반도의 땅. 발 딛는 곳마다 느낌이 다른 바다와 계곡에 여름이 빼곡히 들어찬 변산은 여름의 천국이라 불러도 좋을 곳이다.


'서해가 아름다운 이유는 변산이 있기 때문'이란 말이 있을 만큼 변산반도의 해안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호미질 한 번에 온갖 생명들을 볼 수 있는 곰소만 등 풍요로운 갯벌과 고사포·격포·변산 등 고운 모래로 명자깨나 날리는 해수욕장,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해안도로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변산의 볼거리를 말할 때 새만금 방조제를 맨 앞줄에 세워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하다. 언제 가도 많은 수의 관광버스들이 새만금 전시관 앞을 가득 채우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새만금 방조제를 단순한 여행지로 소개하기엔 부담이 적지 않다.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있긴 했으나, 여전히 '뜨거운 감자'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방조제가 바다 한가운데를 가르고 섰듯, 수많은 이들의 서로 다른 의견이 아직까지도 극명하게 갈려 있는 현장 아니던가.


새만금 전시관에서 4.5㎞ 남짓 곧게 뻗은 길을 달리면 가력 배수갑문에 닿는다. 신시 배수갑문과 더불어 방조제 안팎으로 물의 소통을 제어하는 곳이다. 바다를 가르고 있는 갑문은 내해와 외해 쪽에 각각 8짝, 모두 16짝이 설치돼 있다.


방조제와 주변의 구조물들은 거대함을 숭배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경외감을 느낄 만큼 장대하다. 양윤식 새만금 전시관장에 따르면 110억원짜리 갑문 1짝의 길이는 30m, 높이는 15m로 5층짜리 아파트 한 동의 크기와 맞먹는다. 무게는 484t.80㎏ 쌀 6000만 포대를 쌓은 것과 같다.


마침 썰물 때여서 안쪽의 바닷물이 밖으로 빠져나가는데, 그 모습이 여간 장관이 아니다. 한 짝의 갑문 아래로 초당 1만 5000t의 물이 초속 6∼7m로 빠르게 흘러 내려간다. 장쾌한 물의 흐름을 보고 있자면 몸이 빨려들어가는 듯한 착시현상도 일어난다. 갇혀 있던 바닷물은 대해와 몸을 섞는 순간 거대한 파도로 돌변하며 또 한 번 볼거리를 만든다. 가력 배수갑문에서 고군산군도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는 신시도까지는 9.9㎞. 비포장길을 터덜거리며 가다 만난 신시도의 자태가 어딘가 어색하다. 산의 한쪽 단면이 절개된 때문이다. 한국농촌공사 관계자에 따르면 방조제 공사에 사용된 토사 등 자재의 60∼70% 정도가 잘려진 신시도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자신을 찾아 오는 길을 만드는 데 아낌없이 제 몸을 제공한 셈이다. 신시 배수갑문엔 20짝의 배수갑문이 조성돼 있다. 아직은 갑문이 열려 바닷물이 들고 나는 상황. 하지만 간척지를 휘돌아 가는 138㎞ 4차선 방수제가 완공되는 2015년경이면 갑문은 홍수 등 천재지변이 발생하지 않는 한 영원히 닫히게 된다. 현재 가력 배수갑문 앞까지는 출입이 가능하다. 나머지 구간은 내년 3월쯤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 내변산에서 변산의 속살을 탐하다

새만금과 채석강 등 해안지역이 외변산이라면, 직소폭포와 월명암 등의 산악지역은 내변산으로 분류된다. 내변산은 여러 개의 작은 산이 어깨를 맞대며 변산의 울타리를 이루고 있는 곳. 그 안에 많은 폭포와 맑은 계곡이 숨쉬고 있다. 그 중 최상류 신선샘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직소폭포와 분옥담, 선녀탕 등의 절경을 이루며 흘러가는 봉래구곡은 여름철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명소다.


봉래구곡으로 가는 길은 내변산탐방지원센터에서 시작된다. 완만한 경사의 탐방로를 따라 20분 남짓 걷다 보면 계곡을 휘감아 도는 아담한 저수지, 직소보와 만난다. 우람한 내변산의 암릉들과 잔잔한 물이 어우러지며 산상 호수를 이루고 있다. 봉래구곡의 물을 상수원으로 이용하기 위해 물막이(보)를 만들면서 형성된 인공호수다. 인근에 부안댐이 조성되면서 상수원으로서의 역할이 사라졌으니 풍취에 걸맞은 이름을 지어줄 법도 한데, 여전히 기능성만 강조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직소보의 정경이 마음 속에서 채 떠나기 전, 봉래구곡은 산자락에 감춰 두었던 아름다움을 하나씩 꺼내놓았다. 직소보에서 10분 남짓 올라가면 분옥담과 선녀탕이 나온다. 그리 세지 않은 물줄기들이 예쁜 소와 담을 이루며 넘실대고 있다.


여기서 직소폭포까지는 지척이다. 된비알을 오르느라 숨이 턱에 찰 때쯤 목재데크로 만들어진 직소폭포 전망대와 만난다. 멀리 30m 가까운 수직단애에서 쏟아지는 직소폭포도 장관이려니와, 그 아래 주르륵 늘어선 분옥담과 선녀탕 등이 풍경의 유희를 더하고 있다.


이처럼 봉래구곡은 거센 물줄기가 펼쳐내는 역동적인 아름다움과 소와 담, 그리고 호수 등에 담긴 잔잔한 풍경이 공존하는 곳이다. 직소폭포란 하나의 폭포를 이르는 말이 아니라, 그 물줄기가 만들어낸 봉래구곡의 모든 풍경을 통틀어 표현한 것이라 하니, 이 전망대를 놓쳐서는 안될 일이다. 전망대 위쪽에 직소폭포로 내려가는 길이 나 있다. 물에 젖은 바위 사이를 지나가야 하는데, 대단히 미끄러우므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글 사진 부안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063)

▶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부안나들목→변산, 혹은 경부고속도로→천안논산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태인나들목→30번 국도→변산. 부안군청 문화관광과 580-4224. 내변산 탐방지원센터 584-7807. 새만금 전시관 584-6822.


▶ 잘 곳 :국내 리조트 업계의 명가 대명리조트와 용평리조트가 나란히 서해안에 콘도리조트를 오픈했다. 대명리조트 는 전북 부안 변산반도 내 격포해수욕장에 국내 8번째 리조트를 개관했다. 변산반도 최고의 볼거리로 꼽히는 채석강과 적벽강을 좌우로 거느리고 있는 것이 최고의 장점. 지하 3층, 지상 8층 규모로 410실의 콘도미니엄과 94실의 호텔로 구성돼 있다.3500명을 동시 수용할 수 있는 아쿠아 월드에는 파도 풀을 비롯, 슬라이드 등 다양한 물놀이 시설이 마련돼 있다.daemyungresort.com,1588-4888. 용평리조트 는 충남 보령 무창포해수욕장 앞에 비체팰리스(yongpyong.co.kr)를 개관했다. 전 객실에서 바다를 볼 수 있다. 문을 나서면 바로 해수욕장으로 연결된다는 것도 장점. 지상 13층에 236개의 객실을 갖췄다.3층까지는 수영장, 스파 등 편의시설이 들어서 있다.


▶ 맛집 :'젓갈정식'은 꼭 맛보자.9가지 젓갈의 향연에 밥 한 그릇쯤 금세 사라진다. 곰소염전 맞은편 곰소쉼터가 소문난 집.584-8007.




변산반도 안의 숨은 속살, 직소폭포



조물주의 장난일까, 아니면 인간에 대한 사랑의 다른 표현일까. 전라북도 부안의 변산반도는 생김새부터가 유별나다. 사방을 둘러봐도 변변한 봉우리 하나 없는 한반도의 대표적 평야지대인 호남평야 한켠에서 믿기지 않을 만큼 첩첩산중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동고서저의 한반도 지형에서 서쪽 평야의 끝, 그것도 바다와 인접한 곳에서 요동을 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심이 변산이다.


바닷가에 우뚝 솟아 하나의 산을 형성하는 다른 곳과 달리 변산은 해발 508m의 의상봉을 중심으로 400m 이상의 봉우리들이 이어지며 '작은 산맥'을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 직소폭포라는 멋진 보물을 감춰놨다. 장난이라 보기엔 지나치게 장관이고, 배려라 하기엔 너무 깊숙한 곳에 숨어 있다.


변산은 산이면서도 바다와 맞닿아 있는 독특한 특징을 갖는다. 산악지대인 내변산,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외변산으로 나뉜다. 예로부터 호남의 5대 명산 중 하나로 불릴 만큼 개성있는 절경을 갖춰 1988년 내·외변산 모두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특히 내변산에는 월출과 낙조가 아름다운 월명암을 비롯해 천년고찰 내소사, 직소폭포에서 출발하는 봉래구곡 등이 절경으로 꼽힌다. 그중 굳이 서열을 매기라면 최고의 멋쟁이는 단연 직소폭포다.


직소폭포를 만나는 길은 두 가지. 하나는 내소사에서 출발해 관음봉을 거치며 변산의 속살을 더듬어가는 산행코스이고, 다른 하나는 내변산 깊숙이 들어가 내변산탐방지원센터에서 트레킹을 겸해 다가가는 방법이다.


날씨도 흐린데다 워낙 고온다습해 산행을 포기하고 후자를 택했다. 변산면에서 내변산 방향으로 길을 바꿔 736번 지방도로로 약 10㎞쯤 가면 직소폭포를 가리키는 이정표를 만난다. 여기서 300m쯤 들어가면 탐방지원센터 주차장이 나오는데, 이곳이 출발점이다.


폭포까지는 약 2.4㎞. 탐방지원센터 직원의 설명에 따르면 길이 완만해 쉬엄쉬엄 걸어도 40분이면 폭포에 닿는다고 한다. 주차장을 벗어나 600m쯤 가니 실상사지라는 절터가 넓게 펼쳐져 있다. 신라 신문왕 때 지어진 유서깊은 도량이었으나 한국전쟁 때 모두 불타고 덩그러니 넓은 공지만 남아 있다.


숲으로 터널을 이룬 오솔길을 따라 다시 10분쯤 더 걸으니 갑자기 커다란 호수가 앞길을 가로막는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호수는 규모는 작지만 양쪽으로 펼쳐진 푸른 숲과 어울려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직소보라 불리는 것을 보니 직소폭포에서 흘러내린 물을 가둬놓은듯 싶다. 호수 주위를 따라 이어지는 길도 예쁘다. 나무 데크로 만들어졌는데, 마치 물 위를 걷는 것처럼 시원하다.


호수를 벗어나면 숲 사이로 제법 굵직한 물소리가 들린다. 봉래구곡이다. 늦은 장마로 인한 높은 습도는 마치 사우나를 연상시킬 만큼 후텁지근하지만 푸른 숲과 싱그러운 물소리가 더위의 상당 부분을 덜어간다.


그 뒤에 나무 계단으로 이어지는, 약간 가파른 길이 앞을 가로막는다. 평소라면 어렵지 않은 구간이건만 무더위 때문에 발길이 조금은 무겁다. 계단이 끝나갈 무렵 묵직한 신음이 목구멍을 타고 흘러나오려는 순간,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신음을 탄성으로 바꿔놓는다.


믿기지 않을 만큼 장엄한 경관 때문이다. 멀리 짙은 숲 사이로 빼꼼이 모습을 드러낸 바위 틈 사이로 굵은 물줄기가 굉음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관광이 산업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도록 한다'는 명분 아래 앞다퉈 바로 옆까지 치유 불가능한 상처를 남겨놓은 이름난 계곡의 폭포와는 차원이 달랐다. 조용한 숲길을 걷다 우연히 만나는 장관은 감동 그 자체였다. 설악산이나 지리산 등 골 깊은 심심산골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을 서해안 바닷가에서 만날 줄이야. 다만 보기 좋으라고 만들어놓은 전망대는 오히려 경관을 해치는 '옥의 티'였다.


폭포 바로 아래까지 다가서면 더욱 볼만하다. 도끼로 찍어낸 듯 가파르게 서 있는 절벽을 가르고 쏟아지는 물줄기는 그 모습만으로도 한여름의 더위를 날려주기에 충분하다. 안내판에 따르면 높이가 30m에 이르지만 주변에 비교할 만한 대상이 없어 실감하기 어렵다.


이 물줄기는 폭포 아래 실상용추라 불리는 깊은 소를 만든 후 흘러내려 제2, 제3의 폭포를 만들며 분옥담·선녀탕 등 봉래구곡이라 불리는 절경을 만들고 있다.


[separk@joongang.co.kr] 




짙푸른 전나무 숲길… 검붉은 적벽강 낙조



# 지평선 보이는 만경평야 돌아 변산으로

부안의 변산으로 들어설 요량이라면, 서해안 고속도로 변산이나 줄포나들목에서 바로 닿지 말고, 서김제 나들목에서 내려서 만경 들판을 돌아서 가보는 것이 어떨까. 국내에서 지평선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는 만경평야. 그 평야에서 바라보는 지평선은 부안 격포에서 만나는 수평선과 대칭을 이룬다. 서김제 나들목에서 나오면 평야 사이로 길게 나 있는 '지평선로'가 바로 만경평야로 가는 지름길이다.


평야의 서쪽 끝은 서해다. 하지만 지난 2006년 물막이가 끝난 33㎞의 새만금방조제가 물길을 닫으면, 그 끝은 이제 호수가 될 터이다. 그렇게 된다면, 김제평야 끝자락의 벼랑에 달랑거리듯 붙어있는 절집 망해사(望海寺)도, '바다를 바라본다'는 뜻을 거두고 호수를 바라본다는 뜻의 '망호사(望湖寺)로 이름을 바꿔달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망해사 앞은 아직은 성성한 바다다. 절집 마당에서 바다를 향해 나아가 있는 종루에서 저물녘 울리는 종소리는 웅웅거리며 가물가물 저멀리 바다로 퍼져나간다.


망해사를 지나 남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광활면'을 지난다. 김제에서 지평선을 가장 감격적으로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광활면'이다. 얼마나 장대하게 평야가 펼쳐져 있기에, 지명마저 '광활'이라 붙여놓았을까. 면사무소 앞을 지나는 702번 지방도 위에 서면 자로 그은 듯한 길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나란한 전봇대들이 가물가물 길 끝에서 하나의 점으로 수렴한다. 앞이나 뒤, 양옆이 모두 그야말로 광활한 벌판이다. 이쪽의 논들도 다 간척사업을 통해 만들어진 것들. 논 사이의 작은 마을에 붙은 '전선포(戰船浦)'란 이름도 간척 이전에 그곳이 바다였음을 알려준다. 새만금방조제 공사가 다 마무리되고 여의도 면적의 140배 되는 땅이 만들어지면 바다는 저만치 더 물러설 것이고, 그때가 되면 전설처럼 남은 마을 이름만으로, 먼 옛날 그곳이 바다였던 시절을 추억하리라.


# 내변산 들어서니 그림같은 호수 · 폭포가…

광활면을 거쳐 23번 국도를 타고 등전평야와 내기평야의 너른 들을 지나면 부안에 가닿는다. 그렇게 지평선의 땅 김제를 둘러 돌아왔다면 썰물 때를 기다려 격포의 채석강 앞에 서서 수평선을 만나도 좋겠다. 첩첩이 시루떡처럼 쌓인 벼랑과 붉은 바위의 해안 절경과 그 절경 아래서 보는 수평선의 모습은 빼어나다.


대개 부안을 찾은 여행자들은 변산반도 해안선만 따라돈다. 이래서는 부안의 진면목을 만나지 못한다. 하서에서 변산까지 잇는 736번 지방도. 그 길을 달려보면 그제서야 내변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게 된다. 변산의 최고봉인 의상봉은 고작 해발 506m에 불과하지만, 제각기 방향을 튼 산봉우리들이 첩첩이 숲을 이루듯 서 있는데다, 암봉과 암벽들이 장대한 맛을 풍긴다.


내변산에서 들러봐야 할 곳은 단연 직소폭포다. 내변산 탐방안내소에서 1시간 남짓 오르면 암벽을 파내며 힘찬 물기둥을 직각으로 쏟아내는 직소폭포까지 가닿을 수 있다. 길이 워낙 잘 닦여있어 산에 드는 운치는 덜한 편이라 아쉽지만, 반바지와 샌들차림으로도 쉽게 오를 수 있어 편하다.


직소폭포로 드는 길에서는 폭포보다 오히려 등산로의 중간쯤에 있는 산중호수의 운치가 더 감격적일지 모르겠다. 잠깐의 오르막을 지나 숨을 돌릴라치면, 툭 터지는 시야 가득히 들어오는 호수는 독특하면서도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낸다. 호수는 산 아래에 부안댐을 세우는 공사를 하면서 보를 놓아 만들어진 것. 당초 댐을 다 짓고 무너뜨릴 요량이었으나, 산 아래쪽 농민들이 농사에 도움이 된다며 보를 허물지 말라고 요청해 그대로 남겨두면서 호수가 만들어졌다. 물가 주위에 둘러선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물그림자를 드리운다.


직소폭포로 가는 길은 호숫가의 나무 데크를 돌아 돌아나간다. 한쪽 벽은 짙은 숲, 다른 쪽은 물가를 끼고 새소리를 들으며 걷는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등산이 아니라 숲으로 둘러싸인 호수를 도는 낭만적인 트레킹과도 같은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호수를 벗어나 15분쯤만 더 들어가면 직소폭포다. 직소폭포는 어떠한 꾸밈도 없이 암벽을 따라 물줄기를 직각으로 내리꽂는다. 내변산의 폭포는 죄다 암벽을 타고 장쾌하게 수직으로 쏟아진다. 변산반도 남서쪽의 우동마을 선계폭포도 그렇고, 비가 내리면 모습을 드러낸다는 벼락폭포도 그렇다.


# 곳곳에 예술 품은 내소사 ·개암사 '명소'

부안에는 이름난 절집 두 곳이 있다. 그중 한 곳이, 부안을 찾았다면 누구든 빼놓지 않고 들렀다 가는 내소사다. 내소사의 전나무 숲길은 이즈음 푸르름이 가장 짙다. 일주문을 지나 어둑어둑한 전나무 숲으로 드는 길은 누구나 감탄사를 터뜨릴 정도로 아름답다. 예닐곱살쯤 됐을까, 아빠 손을 잡고 그 숲길을 걷던 아이가 "비밀의 문으로 가는 길 같다"고 말했다. 이런 길이라면 하루 종일도 걸을 수 있건만, 길이 짧아서 아쉽다. 내소사에서 눈길을 잡는 것은 대웅전의 꽃문살이다. 정교하게 깎아낸 문살이 마치 예술품과도 같다.


내소사는 늘 여행자들로 북적이지만, 개암사는 아름다움이 미처 알려지지 않은 탓에 한적하기 이를 데 없다. 웅장한 울금바위 아래 자리잡은 개암사는 대웅전이 가장 볼 만하다. 대웅전의 팔작지붕은 날렵한 선이 마치 금세라도 날아오를 듯하다. 굵은 기둥이 마치 날아오르려는 지붕을 붙잡고 있는 모양이다. 대웅전 천장에는 나무로 깎아만든 험상궂은 아홉마리 용이 있다. 공포와 용마루를 섬세하게 깎아 만든 용 머리는 살아 움직일 것처럼 생동감이 넘친다.


변산반도에서 또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 바로 적벽강이다. 썰물 즈음이면 채석강에는 관광객들이 빼곡하지만, 인근의 적벽강에는 인적이 드물다. 채석강이란 이름이 중국 당나라때 이태백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다가 강물에 뜬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강의 이름을 딴 것이라면, 적벽강은 중국 송나라 소식(소동파)이 놀았던 황주의 적벽강만큼 경치가 좋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검붉은색을 띤 바위와 절벽으로 이뤄진 적벽강의 해안은 특히 석양 무렵, 낙조에 바위가 진홍색으로 물들 때 장관을 이룬다. 적벽강에는 높이가 30m 정도 되는 2개의 절벽으로 된 바위가 있는데, 그 안에 용굴이 있다. 용굴에서 북쪽 해안에는 형형색색의 몽돌들이 깔려 있다.


적벽강 부근의 벼랑 위를 따라 해장죽(시누대) 무성한 길을 따라가면 수성당이 있다. 칠산 앞바다를 관장하는 개양할미를 모신 사당이다. 다른 곳의 사당들이 '유물'로만 남아 있는 데 반해, 수성당은 지금도 하루가 멀다 하고 굿판이 열린다. 개양할미는 굽나막신을 신고 바다를 걸어다니는데 아무리 깊은 바다에서도 버선이 젖지 않았다는 전설이 전해내려온다.


# 황진이에 비견할만한 매창의 자취 만나

부안 땅에서는 부안 출신 기생 매창의 드라마틱한 생애와 그가 지은 아름다운 시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겠다. 황진이에 비견할 만한 명기였다던 매창. 그의 이름이 낯설더라도 누구든 이별가의 '절창'으로 꼽히는 이 시 한구절만큼은 기억하리라.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이매창


이별의 정한이 뚝뚝 묻어나는 이 시에서 '님'이란 바로 스물여덟살 연상의 촌은 유희경이다. 유희경은 천민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유성룡을 도와 나라에 충성을 다했고, 훗날 가의대부 벼슬을 지냈던 인물. 임란 직전 유희경이 마흔여섯살 때 부안에서 그를 처음 만난 열여덟의 매창은 평생을 그를 그리워했다. 조선후기 시가집 '가곡원류'에 실린 이 시의 해설은 이렇다. "계랑(매창)은 부안의 이름난 기생이다. 촌은 유희경이 애인이었는데, 촌은이 서울로 돌아간 뒤에 소식이 없었으므로 이 노래를 지어 부르고 절개를 지켰다."


'홍길동전'을 쓴 허균도 부안에서 매창과 밀회를 나눴다. 허균은 당시의 선비답지 않게 남녀관계에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심지어 여행할 때마다 잠자리를 같이 한 기생 이름을 기행문에 버젓이 적어놓을 정도였다. 황해도사 벼슬에 있을 때도 서울에서 기생을 데려다 놀며 물의를 일으키는 바람에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기도 했었다. 분방한 로맨티스트였던 허균은 그러나 매창과는 정신적인 교감만을 나누었다. 매창의 시와 거문고 타는 솜씨를 좋아했던 허균은 매창과 마주앉아 시를 논하고, 거문고 소리를 들으며 흥취에 젖었다.


서른여덟의 나이에 폐병으로 세상을 뜬 매창은 부안읍 남쪽의 공동묘지에 거문고와 함께 묻혔다. 잡풀들이 우거진 매창의 묘는 지금도 부안읍 한쪽에 그대로 남아 있다. 매창이 죽고 45년이 지나서 부안고을의 아전들이 그가 지은 58편의 시를 목판에 새겨 내변산 개암사에서 간행했다. 이렇듯 한 여인의 시만을 묶어 책으로 간행한 것은 그야말로 전무한 일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매창의 시집은 세 권이 남아 있는데, 두 권은 간송미술관에, 또 한 권은 미국 하버드대 도서관에 남아 있단다.


내변산의 명소마다 매창의 자취가 남아 있다. 아름다운 전나무 숲길을 따라 들어가서 만나는 내소사는 매창과 허균이 시와 노래를 나누던 곳이었고, 내변산의 월명암도 매창이 자주 들어 참선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매창은 월명암에 올라 변산 앞바다로 떨어지는 낙조풍경을 보며 "하늘에 기대어 절간을 지었기에…"로 시작하는 '등월명암'이란 시를 남기기도 했다.


부안=글·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 찾아가는 길 = 부안에 곧바로 닿으려면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부안나들목에서 내려서 30번 국도를 타고 들어가면 된다. 30번 국도를 계속 따라가면 '바람모퉁이'에서 서해바다를 만나는데, 이 길을 따라 줄포까지 줄곧 바다를 끼고 달릴 수 있다.


내변산으로 향하려면 변산에서 하서를 잇는 736번 지방도를 타면 된다. 꼭 산에 오르지 않더라도 이쪽 길을 따라 내변산의 한가운데를 달리면 첩첩이 이어진 내변산의 산세를 만끽할 수 있다.


내변산 산행을 즐기려면 남여치매표소에서 시작해 월명암을 오르는 것도 좋지만, 여름산행이라면 사자동에서 봉래구곡의 물길을 따라 선녀탕과 직소폭포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택하는 편이 낫다.


◆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 해변을 끼고 있는 해수욕장 인근의 숙소들은 휴가 절정기인 8월초는 대부분 예약이 끝났다. 새로 들어선 대명리조트 변산도 8월 둘째주까지는 방을 얻기 어렵다. 그러나 내변산 안쪽의 민박집들은 여유가 있는 편이다. 산과 바다를 함께 즐길 요량이라면 내변산 쪽에 숙소를 정하고, 해변을 찾아 해수욕을 즐기고 돌아오는 것이 오히려 낫다. 내소사 입구의 정든민박(063-582-7574)은 주인내외의 친절함으로 드물게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민박집이다. 내변산을 넘는 736번 지방도를 따라 군데군데 민박집들이 있다.


변산과 채석강 일대는 횟집들이 즐비하다. 부안 궁항 부근에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촬영지가 있어, 일대 횟집들이 너나없이 해물로 차린 한정식을 '이순신 상차림'이나 '충무공밥상'이라고 이름 붙여 내놓고 있다. 변산 일대에서 가장 추천할 만한 맛집은 격포 버스터미널 부근의 군산식당(063-583-3234). 백합을 은박지로 싸서 구워낸 백합구이와 갑오징어 무침 등이 맛깔스럽다. 특히 백합으로 쑤어낸 백합죽(1만원)은 부드러우면서도 고소한 맛을 낸다. 이 일대 다른 식당의 것과 비교해 보더라도 월등한 맛이다.



출처 : 날마다 알아야 힐 10개의 한국뉴스
글쓴이 : 헌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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