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산(淸凉山 870m)
위 치 : 경북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 산 61번지
(봉화군 명호면, 재산면 - 안동시 도산면, 예안면에 위치)
개 요 :
봉화읍에서 동남쪽으로 29km, 안동시에서 동북쪽으로 24Km 떨어진
청량산(870m)은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고,
산 아래로 낙동강이 흐르고 산세가 수려하여 예로부터 소금강으로 불려진 명산이다.
이전에는 수산水山으로 불렸다고 한다.
청량산에는 청량사 유리보전과 응진전, 퇴계 이황이 공부한 장소에 후학들이 세운 청량정사, 서성書聖 김생이 글씨 공부를 하였다는 김생굴, 대문장가인 최치원이 수도한 풍혈대風穴臺,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와서 쌓았다는 산성 등 많은 유적과 선현들의 자취가 남아 있다.
청량산가淸凉山歌 :
퇴계는 어릴 때부터 청량산에서 글을 읽고 사색을 즐겼으며
말년에도 도산서당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틈틈이 이 산을 찾았다.
청량산도립공원 표석 뒤로 퇴계의 '청량산가'시비가 있다.
청량산가:
淸凉山 六六峰을 아는 이는 나와 白鷗
白鷗야 竩辭하랴 못 믿을 손 桃花로다
桃花야 뜨지 마라 魚舟子 알까 하노라
* 청량산 6.6봉을 아는 이는 나와 흰 기러기 뿐인데,
이곳에 아름다운 곳이 있음이,
복숭아 꽃잎이 물에 떠내려가서 바깥사람들에게 알려질까
퇴계가 못내 불안해하던 마음이 나타나 있다...
퇴계는 도산서당을 지을 때, 이곳 청량산과 현재 도산서원 자리를 두고 끝까지 망설였을 만큼 청량산을 사랑하고 아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산 자체는 메마른 산이라
젊다면 모르되 늙은 몸으로는 도산서원이 있는 도산이 오히려 살기에 좋다고....
그러나 청량산을 멀리서 바라보는 퇴계의 눈은 항상 청량산을 그리워하였다.
그의 "산을 바라보며"라는 시 :
"어느 곳을 가더라도 구름 메(산) 없으리오,
청량산 육육봉이 경개 더욱 맑노매라,
읍청정 이 정자에서 날마다 바라보니,
맑은 기운 하도 하여,
사람 뼈에 사무치네."
라며 청량산을 읊고 있는 것만 봐도
청량산을 보는 눈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출처 : 이 가원 저 "퇴계시 역주")
청량사 淸凉寺
1) 청량사유리보전琉璃寶殿
원효대사가 신라 문무왕 3년(663년)에 창건.
(혹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설도 있다.)
경북유형문화재 제47호.
고려 31대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머무른 곳으로
유리보전의 현판 글씨는 공민왕의 친필로 전해 오고 있다.
유리보전은 약사여래불을 모신 곳이라는 뜻이다.
지불紙佛 즉 종이로 만든 부처. 국내에서는 유일하다. 지금은 금칠을 했다.
그리고 불탑
2) 청량정사淸凉精舍,
경북 문화재 자료 제244호
연화봉과 금탑봉 사이에 자리한 청량정사는
퇴계 이황이 공부하던 곳에 사람들의 합의로
조선 순조 32년(1832년)에 창건.
1896년 일본군의 방화로 소실되었다가 1901년에 중건하였다.
강당 10칸, 부속건물 6칸으로,
당은 오산당吾山堂, 헌은 운서헌雲棲軒, 요는 지숙요止宿寮, 문은 유정문幽貞門이다.
3) 응진전應眞殿
청량사의 부속암자로 금탑봉의 중간 절벽에 위치해 있다.
내부에 16나한이 봉안되어 있고
암자의 앞뒤는 절벽이고
뒤쪽 절벽위에는 동풍석動風石이 있으며
요사체의 옆의 바위틈에는 감로수가 흘러나온다.
* 외청량사 : 금탑봉 밑에 자리한 이 절은 신라 신문왕3년(683년)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고, 현재의 당우는 고려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영전이 있는 응진전과 산령각, 요사뿐이다.
청량산 12봉(6.6봉)峰
퇴계의 청량산가에 나오는 6.6봉은 주세붕이 명명하였는데
장인봉(丈人峰, 의상봉) :
청량산의 최고봉인 주봉으로 높이가 870.4 미터이며
봉상은 주위가 약 200미터이고 측면사방은 만장절벽의 단애로 둘러쌓여 있고
정상은 배구형의 황토층 토질로 형성되어 만병초등 각종 고산식물들이 자생하고 있다.
이름의 유래는 1300여년전 신라 중엽의 고승이며 화엄종의 시조인
의상대사께서 입산수도 한 곳이라 하여 불리워졌으며
산 중턱에는 의상대사가 수도하던 의상대와
그가 기거하던 의상굴이 있으며
건너에는 물 없는 밭에서 자라는 연이 있으며 그 잎이 파라솔만큼이나 넓어서 우산으로 대용할 정도인 매우 희귀한 식물인 강연이 자생하고 있다.
장인봉이란 이름은 중국의 태악장인봉과 비유하여 지은 이름이다.
외장인봉外丈人峰 :
선학봉仙鶴峰 :
산 모양이 마치 학이 공중으로 날아 솟구치는 듯하여 이름이 지어졌다.
금탑봉金塔峰 :
층층으로 이루어진 바위가 9층 금탑이 구름 속에서 솟은 듯이 장관을 이루며,
그 아래 4개의 암자터와 총명수가 있다.
층마다 소나무들이 테를 두른 듯 암벽에 뿌리를 내렸다.
절벽 아래로 붉게 타는 단풍이 장관이다.
경일봉의 동남쪽에 위치하며
청량사나 그 아래 계곡에서 바라보면 절벽이 층층으로 구성되어
마치 구층 금탑이 구름 속에 솟은 것처럼 보여 금탑봉이라 불린다.
산 중턱에는 응진전과 그 후면의 동풍석 그리고 4개의 암자터와 총명수가 있다.
자란봉紫鸞峰 :
선학봉의 동쪽과 내산 경계에 위치하며
그 모양이 마치 신비로운 새가 춤을 추는 것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 자소봉으로 가는 산길 능선이다.
자소봉紫宵峰 :
내산의 주봉으로서 기암절벽이 하늘로 우뚝 솟아
그 위용은 가히 내산의 여러 봉우리를 포용하는 듯하다.
탁필봉卓筆峰 :
자소봉 서남쪽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는데,
문필봉이라고도 하며,
그 형상이 마치 붓을 뽑은 듯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청량사 바로 뒤에는 청량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보살봉이 있다.
원래 이름은 탁필봉이지만 주세붕선생이 지형을 보고 봉우리 이름을 다시 지었다고 한다).
연적봉 硯滴峰 :
탁필봉 서쪽 가까이에 있으며
경관이 수려하여 산을 찾아오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정상에는 바위가 평평하여 12명 이상의 사람이 앉아서 쉴 수 있으며
맑은 날 정상에서 멀리 바라보면 소백산과 속리산, 재산면 일대가 시원하게 보인다.
산 모양이 마치 연적과 같아 이름 지어졌다.
연화봉蓮花峰 :
연적봉 서쪽에 위치하며
마치 산 모양이 연꽃 봉우리가 피어나는 것 같아 붙여진 이름이다.
이 산 중턱에는 정수암이라는 옛 절터가 남아 있다.
향로봉香爐峰 :
연화봉 서쪽에 위치한
이 산의 형태가 마치 향로의 모양과 흡사하여 이름 지어졌다.
산 아래에는 자비암 옛터와 자비대가 있다.
자비대에서 앞을 바라보면 내산 전경을 훤히 볼 수 있다.
경일봉擎日峰 :
자소봉 서남쪽에 위치하며
봄, 가을 연대사 옛 터에서 일출광경을 바라보면
해가 경일봉 정상의 한복판에서 올라오는 것처럼 보인다.
봉우리 아래에는 김생굴, 오산당 그리고 옛 암자터가 있으며
산 북쪽에 고룡혈굴이 있다.
축융봉祝融峰 :
내산의 최남단에 위치하며 정상에서 바라보면 동남쪽으로 아득하게 전망을 볼 수 있다.
산 위에는 편편한 바위가 있으며 넓이는 4평 정도나 돼 여러 사람이 앉아 쉴 수 있다.
이 곳은 흙과 나무가 전혀 없어서 항상 깨끗한 바닥을 유지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에 신선이 내려와서 바둑을 두었다는 바둑판의 흔적이 보이며,
가물 때 기우제를 하면 영험이 있다고 전해진다.
* 아름다운 12봉우리가 연꽃잎처럼 청량사를 둘러싸고
(청량사는 연꽃의 <수술>자리에 해당한다.)
바위병풍을 두른 듯이 산 위에 솟아있다.
선녀가 유희를 즐겼다는 선녀봉도 있다.
*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도
청량산의 특이한 경관에 주목하여 청량산 계곡에 들어와
"사면에 석벽이 둘러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12대(臺)
높고 평탄한 곳으로 사방을 관망할 수 있는 곳을 말하며 주로 금탑봉 중층에 위치하고 있다.
최치원이 글을 읽었다는 독서대를 비롯하여 봉우리마다
어풍대御風臺,
밀성대密城臺 (고려 공민왕이 이곳으로 피난 와서 머무를 때 죄인을 사형시켰던 곳으로
양벽이 끊어지는 듯 불규칙적이다),
풍혈대風穴臺, 학소대鶴巢臺, 금강대金剛臺, 원효대元曉臺, 반야대般若臺,
요초대瑤草臺, 경유대景遊臺, 화암대華巖臺, 채하대彩霞臺, 의상대義湘臺 등이 있다.
산속에는 신선이 내려와서 바둑을 두었다는 신선대神仙臺,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은신한 오마대五馬臺도 있다,
8개굴
1) 김생굴(金生窟) : 신라의 명필 김생이 10년간 글씨 공부를 했다고 전해지는 곳
‘옛날 김생이 이 굴에서 9년 동안 서도를 닦은 후, 스스로 명필이라 자부하고 하산할 준비를 했다고 한다. 그러자 한 여인이 나타나 자신도 9년 동안 길쌈을 했으니 솜씨를 겨뤄보자고 한다. 이리하여 컴컴한 어둠 속에서 서로 솜씨를 겨루었는데... 길쌈해 놓은 천은 한올 흐트러짐이 없는데 반해 김생의 글씨는 엉망이었다.
이에 김생은 다시 1년을 더 정진한 후 세상에 나와 명필이라 칭송을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 완당(추사 김정희)이 43세인 1825년에
경주 남산 기슭의 창림사(昌林寺)터에서
<무구정광대다라니 無垢淨光大陀羅尼>의 앞부분과
<무구정탑원기 無垢淨塔願記>가 발견...,
“이 창림사비는 워낙 유명하여 원나라 때 최고의 서예가 조맹부(趙孟頫)도 상찬(上讚)을 아끼지 않아... 이 글씨는 신라의 김생이 쓴, 자획(子劃)이 깊고, 법도가 있어... 옛말에 ‘어느 곳엔들 재주있는 사람이 나지 않으랴.’하였더니 진실로 그러하구나...”라고 하였는데,
그 김생이 청량산에서 글씨를 공부하였던 곳이다.
2) 금강굴(金剛窟) : 비와 바람을 피하고 은거하기에 좋은 곳이다.
3) 기타의 굴 : 원효굴(元曉窟), 의상굴(義湘窟), 반야굴(般若窟), 방장굴(方丈窟), 고운굴(孤雲窟), 한생굴(邯生窟)등이 있다.
청량산 4우물
1) 총명수(聰明水) : 어풍대의 상류 요초대에 있으며 천길 절벽 사이에서 물이 솟아난다. 물의 양도 항상 일정하며 최치원이 이 물을 마시고 정신이 총명해졌다고 해서 총명수라는 이름이 생겼다.
2) 청량약수(淸凉藥水) : 청량산성 입구에 있어 일명 산성약수라고도 한다. 위장병, 관절염에 효험이 있다 하며 소문을 듣고 각지에서 사람들이 찾아온다.
3) 감로수(甘露水) : 상청량암 옛 절터 뒤에 있으며 층층이 높은 절벽 사이에서 스며 고이는 물이 맑고 담백하여 승려들이 부른 이름이다.
4) 김생폭(金生瀑) : 김생굴 앞에 있으며 비올 때 오산당에서 바라보면 천길 높은 곳에 흰 물줄기가 쏟아지는 것이 장관이다.
# 청량사로 올라가는 길에 연결되는 물줄기의 일부이다.
흐르는 땀을 식히기에는 제격이다.
산성
1) 공민왕산성恭愍王山城
축융봉의 동남쪽에 산성마을을 감싸고 있다.
축조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와 쌓았다고 한다.
자연지세를 이용하여 능선위에 쌓았다.
현재 성터와 장대將臺가 남아 있다.
2) 청량산성淸凉山城
청량산성은 청량사 유리보전 뒤쪽의 연화봉, 자소봉, 경일봉 일대에 걸쳐 연결되었고,
내성인 공민왕산성을 방어하기 위한 외성역할을 한 산성으로 보인다.
이 산성은 봉우리와 봉우리사이의 협곡을 돌과 흙으로 쌓아 연결한 포곡식산성으로, 조선 선조28년(1595년)에 개축되었다는 기록(영가지永嘉誌)이 있어 그 이전부터 이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는 석성 1곳과 건물터 2곳이 남아 있다.
3) 오마도산성五馬道山城
공민왕산성 서쪽 끝에 장대가 위치한 곳에서 청량산 동쪽 끝인 탁립봉에 걸쳐 연결되어 있다. 내성인 공민왕산성과 외성인 청량산성을 연결하는 도로기능과, 재산면 쪽을 방어하는 기능을 겸하고 있다. 성문터와 석성 등의 유구가 남아 있어 신빙성을 더 해 주고 있다.
*** 출처 : 1) 봉화군 / 청량산 도립공원 안내책자
2) 유홍준 / 완당평전
3) 기타
#1
청량산에서 만난 야생화들
1) 꿩의바람꽃
2) 흰 노루귀
3) 제비꽃
4) 노랑제비꽃
5) 큰괭이밥
6) 할미꽃
7) 현호색 들
#2
청량정사 옆에는 산꾼의 집이 있다.
이 집에는 누구에게나 약차 藥茶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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