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겨울, 피난가던 여인과 아이가 서울근교 한강에서 얼음을 깨고 물을 마시고있다. 올리는 사진들은 처음보는 장면들로 지금은 페간된 'US Camera' 1953년 책에 수록되었던 사진들이다. 한국인이 등장하는 사진만 골라 계제한다.
1948년 여수에서 잠시 발생했던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으로 가장의 죽엄을 확인하고 있다.
공산주의자들로 의심되는 여인들이 한국국군에게 정지당하고 있다.
반란을 일으켰던 군인들이 체포되어 추럭에 실려 군법회의장으로 가고있다.
1950년 북한군이 후퇴하면서 대전근교 어느 고랑에다가 민간인들을 대량학살해 버리고 간 장면.
터키군 연대 야전병원에서 의사가 불에 탄 소년을 돌봐주고 있다.
폭격당한 압록강수력발전소.
1951년 6월 24일 미해군 전폭기가 사진 왼편의 중공쪽은 놔 두고 북한쪽 발전소만 폭격하였다. 영국은 즉시 자신들과 협의 없이 폭격을 감행했다고 항의 해 왔다.
거제도 제76포로수용소 표말이 서있고 그 뒤의 프랑카드에
"미군은 북조선인민군과 중국지원군을 더 이상 살상하지 않겠다고 한 도드준장과 손준장의 책임있는 약속을촉구한다." 라고 쓰여저있다.
기사내용을 보면
"거제도포로수용소에서 웃지못할 코메디같은 사건이 벌어젔다. 수용소에서는 내부에 있는 주동자와 외부에 있는 간첩에 의하여 매일같이 크고 작은 위반 사항들이 수없이 많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중에 제일 큰 사건은 5월 7일 발생한 수용소소장 후란시스 도드준장의 납치사건이다. 제76포로수용소 정문에서 북한군포로들이 도드준장을 끌고 들어가 78시간동안 감금했던 사건이다.
도꾜 사령부에서는 즉시 찰스 콜손준장을 새 포로수용소소장으로 임명하였다.
콜손준장은 주동자들의 요구조건을 다 들어주는 바게인 협상을 통해 도드준장을 석방시켰다. 곧바로 장군 둘 다 도꾜로 불려가 징계위원회의에 회부되었고 평생대령으로 강등되었다. 크라크대장은 감금하에서 이루워진 협상은 인정할수 없다고 선언하고 포로들을 분리수용하였다.
George Sweers 촬영.
UN군이 제76거제도포로수용소에 진입하여 텐트밑을 파 헤처 여러구의 시체를 찾아냈다.
George Sweers 촬영.
제76거제도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을 지휘하던 인민군 대령 이학구가 체포되는 순간.
미군들은 76수용소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육박전이 벌어젔고 그 와중에 미군 한명이 죽었다.
스웨덴기자 Hans Malmberg 촬영.
부산에 있는 대통령관저 정원에서 기자회견을 하고있는 이승만대통령. 기자의 질문에 성공적으로 교묘히 빠저나갔다.
이대통령이 어떤 대답을 했고 어떤 대답을 피했는지 기록은 없으나 선거에서 압도적승리를 거둔대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민간인이 폭격으로 부상을 입고 야전병원에 실려왔다.
곧바로 외과수술에 들어갔는데 마취시키지도 않고 왼쪽다리를 절단했다.
이 사진을 찍을 즈음에는 환자는 보다 낳은 장비들이 있는 민간병원으로 옮겨진 때 였다. 가족들이 달려와 사람들이 우굴대는 병동에서 밥을 짓고있다. 밥지을 쌀이 있으니 그래도 이들은 낳은 편이다. 많은 민간인들이 전쟁으로 먹을게 없어서 굶는수가 더 많다.
사진작가 Horace Bristol 이 촬영한 사진중에 사람들이 주목하지 안을수 없는 장면이다. 서울시가전에서 부상당한 여인이 죽엄을 기다리고있다.
Horace Bristol 촬영.
다시 서울에서 피난길에 오른 아이들이 기차역에서 부모를 잃고 울고있다.
운이 좋게도 끼니를 얻어 먹는 고아.
A.G.Thompson 공군대위 촬영.
한국인가족이 지켜보고있는 중에 187전투여단이 낙하산점프훈련을 하고있다.
187전투여단은 38선 이북 평양근교에서 점프한 최초의 미군이다.
그후에 속초, 순천, 문산에서도 점프했었다.
알려지지 않은 미군병사 촬영.
한국인 노동자들이 아스팔트 녹이는 일을 하고있다.
한국은 일본과 다른점이 도로들이 모두 시골길처럼 좁은 흙길이다.
미군공병단은 도로 넓이는 일에 주력해야하고 한국인 노동자들의 도움이 절실하다.
알려지지 않은 병사 촬영.
한국군보병들이 위생병의 치료만 받고 빈집마당에 앉아 야전병원으로 후송을 기다리고 있다. 고지전투에서 한국군은 많은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한국군은 빠르게 미군병술을 습득해 나가고있다.
짧은 기간내에 무려 16개도 더 되는 사단을 창설하고 또 전투에 투입시키고 있다.
영국인 사진작가 Hardy Bert 가 찍은 가장 훌륭한 사진중에 하나로 "인천상륙(The Inchon Landing)"은 Missouri Pictures of the Years 상을 받았다.
작가의 멘트를 보면 1950년 9월 15일. "부상당한 노인은 미친 염소처럼 깡충깡충 뛰었고, 아이를 안고있는 부인은 손부터 들고, 아이도 따라서 손들고, 모두들 태극기를 찾느라고 야단이다."
하루아침에 세상이 뒤바뀌는 바람에 모두가 혼돈된 상태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