死의 찬미/섹소폰& 윤심덕
광막한 광야를 달리는 인생아
너는 이 세상에 무엇을 찾으러 왔느냐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평생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
녹수청산은 변함이 없건만
우리 인생은 나날이 변했다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평생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
적막한 강변을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데 이냐
쓸쓸한 세상 적막한 苦海에
너는 무엇을 찾으러 하느냐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허무
웃는 저 꽃과 우는 저 새들이
그 운명이 모두 다 같구나
삶에 열중한 가련한 인생아
너는 칼 위에 춤추는 자로다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설움
잘 살고 못 되고 찰나의 것이니
흉흉한 암초는 가까워 오도다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
돈도 명예도 내 님도 다 싫다
요즘도 자살사이트가 유행하듯 나라 잃은 그 당시에는
젊은이 사이에 죽음의 찬미(讚美)가 인생의 도피처였을까요?
일본의 에도시대에는 신쥬(心中)가 유행처럼 번져
못 이룰 사랑을 안타까워 하는 남녀가 동반자살하는 것은 못 다한
사랑이 이승을 떠나 저승에서는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당시는 지극히 아름다운 일로 여겨졌었다는군요.
1926년 비련의 여인 윤심덕(尹心悳)이가 자기를 사랑하던 작곡가
홍난파님을 멀리 하고 목포 갑부집 청년 김우진[가수 남진
(본명:김남진)의 4촌 형)과 이 노래를 부르며 현해탄의 밤바다에 도쿠주마루(德壽丸)를 뒤로하고 그해 팔월 사일 오전 네시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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